아브로스 FC
1. 개요
아브로스 FC는 스코틀랜드 앵거스 주 아브로스를 연고지로 하는 팀이다.
2. 역사
2.1. 창단
아브로스 FC는 1878년 7월 1일, 조지 호텔에서 창단되었다. 아브로스 FC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1877년 아브로스 럭비 클럽의 선수들이 던디 FC 선수들을 초대하여 경기를 치른 이후 축구 구단 창단의 논의를 지속하였고, 이에 따른 결과임을 언급하고 있다.
2.2. 초창기 (1878~1891)
축구 구단으로서 구색을 갖춘 아브로스 FC는 홈구장 게이필드를 인수하였다. 인수 당시에는 쓰레기장이었지만, 아브로스 FC는 쓰레기장을 고쳐 홈구장으로 만들었다.
1882년, 아브로스 FC는 처음으로 구단의 색상을 정했다. 이전까지 그들은 검은색과 흰색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1882년에 이르러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적갈색의 유니폼을 채택하였다.
1883년 포파셔[4] FA의 창립 멤버가 되었고, 1884년에는 강호 레인저스 FC를 4-3으로 꺾는다. 이후, 게이필드의 크기를 거론하며 경기는 다시 치러졌고 패배했으나[5] , 아브로스는 스코틀랜드 축구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걸 수 있었다.
1885년의 대승에 이어, 마침내 스코틀랜드에 리그가 세워지는 것이 합법화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리그 창립이 의논되었다. 1891년 4월 노던 리그 총회가 열리며, 리그 창립은 기정사실화가 되었다.
2.2.1. 1885년의 대승(大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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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스코틀랜드 축구계에서 한 자리를 잡은 아브로스 FC. 그들은 스코티시 컵에 참가하게 되며, 1885년에 창단된 신생팀 본 어코드를 만난다. 비록 아브로스 또한 창단된 지 7년밖에 되지 않는 신생팀이었지만, 그들의 경험은 신생아인 본 어코드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한편, 당시 컵에는 한 경기도 뛰지 않은 신생팀도 참가할 수 있었기에, 본 어코드는 야심 차게 도전장을 내걸 수 있었다.
당시 본 어코드 팀원들은 어떠한 축구 전문 장비를 하고 있지 않았고, 많은 사람은 아브로스의 대승을 예상했지만, 고득점 경기가 흔했던 당시에도 이러한 스코어는 전무후무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미 전반전이 종료된 시점에서 15-0으로 앞서고 있었고, 후반전이 종료될 때까지 21골을 더 넣었다.
여러 언론에 따르면, 아브로스는 총 41골을 넣었으나 그 중 5골은 오프사이드로 취소되었다고 한다. 지미 스토몬트[6] 는, 심판의 판정이 좀 더 정확했다면 자신들이 43골을 넣었을 거라 인터뷰하기도 했다.
아브로스의 키퍼 짐 밀른 스르는 거의 공을 터치하지 않았고, 일각에서는 그가 관중들이 준 우산을 들고 비를 피했다는 말도 있다.
이 경기는 프로 경기에서 나온 최다 득점 경기로 기록되었고, 이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존 페트리(당시 18세)의 개인 13골 득점 기록도 여전히 타이 기록[7] 에 그칠 뿐, 깨지지 않았다.
2.3. 노던 리그에서의 전성기 (1892~1915)
아브로스는 노던 리그의 창립 멤버가 되었고, 첫 시즌인 1891-92 시즌 5위[8] 를 했다. 이어진 1892-93 시즌에는 팀이 8팀에서 10팀으로 늘었고, 아브로스는 노던 리그에서 우승을 거두게 된다.
이후 아브로스는 스코티시 퀄리파잉 컵[9] 에서 활약하거나, 디스트릭트 채리티 실드 등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1903년 마침내 그들은 스코티시 퀄리파잉 컵에서 우승을 거두었고, 앵구스 지방의 터줏대감으로 올라섰다. 그들은 1903년 퀄리파잉 컵에 우승함에 따라 스코티시 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준결승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지속해서 퀄리파잉 컵 결승에 올랐고, 센트럴 리그의 창립자가 되는 등[10] 꾸준히 활약하였으나, 1차대전이 발발하며 그들의 황금기는 반강제적으로 막을 내린다.
2.4. 1차 대전 공백기 (1915~1920)
1차 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노던 리그가 중지되었다. 반면, 잭 피어슨과 알렉 밀른은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하였다. 노던 리그가 1920년을 끝으로 사라짐에 따라, 센트럴 리그의 최종 멤버가 정해졌으나 아브로스는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직후 1920년 그들은 노던 리그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냈다.
2.5. 프로 전환도 잠시, 2부 리그에서 침체하다 (1921~1934)
노던 리그가 폐지됨에 따라, 아브로스는 처음으로 프로 리그인 스코티시 디비전 2에 합류한다. 당시 2부리그에 해당하는 리그였기에, 아브로스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승격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좋은 모습을
아브로스의 첫 시즌은 다사다난했다. 그들은 세인트 존스톤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었으나, 두 명의 선수가 퇴장을 당했고 팬들은 이에 분개, 경기장에 난입하였다. 경찰은 그들을 겨우겨우 저지하였고, 아브로스는 첫 경기부터 혼란을 겪었다.
이후 아브로스는 20위 중 16위의 순위를 기록하며 첫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아브로스는 이후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승격에 번번이 실패하며 2부 리그에 머물렀다. 다만 고무적인 부분은, 이따금 강팀을 잡으며 언더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2.6. 1부 리그에서 황금기를 보내다 (1935~1940)
1934년 아브로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조지 머치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매각하며 이적료를 벌었고, 34-35 시즌 주장 콜린 맥냅과 키퍼 조지 커밍의 활약으로 승격을 확정 지었다.
첫 시즌 11위[11] 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 이후 키퍼 조지 커밍을 미들즈브러에 매각했으나 14위, 11위, 17위를 기록하며 연이어 잔류에 성공하였다. 전쟁이 발발하며 비록 시즌은 중단되었지만, 그들은 1부 리그에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충분한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2.7. 2차 대전 공백기, 억울하게 강등되다 (1940~1945)
2차 대전 당시 아브로스는 거의 구단으로서 활동하지 못했다.
2.8. 다시 2부 리그에서 침체하다 (1945~1967)
2차 대전이 끝나고, 리그가 재개된 이후에는 심지어 2부 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팬들은 많은 불만을 드러내었지만, 리그는 지속되었다. 비록 1958-59 시즌 잠깐 승격에 성공하나, 바로 강등당했고[12] 아브로스는 긴 시간을 2부 리그에서 보내게 된다.
한편, 이후 팀 통산 최다 경기 출장자가 될 톰 카길이 1966년 데뷔전을 치렀다.
2.9. 다시 1부 리그로 승격하여, 중흥기를 보내다 (1967~1979)
1967-68 시즌 아브로스는 지미 잭과 알버트 핸더슨의 60골 합작에 힘입어 1부 리그에 승격하지만, 곧 이어 최하위로 강등당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난 20년간의 그들과 달랐고, 1971-72 시즌 다시 승격을 거둔다. 첫 시즌 그들은 강호 셀틱을 상대로 3-3 무승부를 거두며 15위[13] 로 잔류하고, 1975년 개편된 리그에서는 5위를 거두며 선전한다.
2.10. 유서 깊은 팀의 몰락 (1979~1997)
하지만 선전은 여기까지였다. 다음 시즌 그들은 강등당하고, 20세기에는 더는 1부 리그의 문을 열지 못한다.
1983년 3위를 기록하여 승격의 문턱까지 다가갔지만, 이듬해에는 최하위를 기록하며 마침내 3부 리그로 강등당한다.
하지만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2부 리그로의 승격은 고사하고, 1990년에 이르러 최하위를 기록하며 4부 리그로 강등당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1부 리그에서 활약했던 팀의 몰락이었다.
2.11. 2부에서 4부까지 유랑생활 (1997~2018)
1997-98 시즌 마침내 아브로스는 준우승을 거두며 3부 리그로 복귀하고, 2001-02 시즌 준우승을 거두며 2부 리그로 복귀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03년 그들은 다시 3부 리그로 강등당하고, 2004년 다시 강등당하며 순식간에 다시 4부 리그 팀이 된다.
그들은 고군분투했고, 2007-08 시즌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우승을 거두며 마침내 다시 3부 리그로 복귀한다.
2009년 그들은 다시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여 강등당하고, 2010-11 시즌 우승을 거두며 3부 리그로 복귀한다.
이후 2011-12 시즌 승격에 근접했지만 무산되었고, 2013-14 시즌에는 강등되며 4부 리그로 돌아간다.
2.12. 다시금 부활을 시사하는 붉은 빛 (2016~현재)
2016년 3월 현재 감독인 딕 캠벨이 부임하였고, 팀은 더욱더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들은 2016-17 시즌 리그 2[14] 에서 우승을 거두며 3부 리그로 복귀했고, 딕 캠벨은 더욱더 팀을 개선하며 2018-19 시즌에는 16년 만에 2부 리그 승격을 확정 지으며 팀의 부활을 알렸다.
3. 최근 시즌
3.1. 2019-20 시즌
첫 시즌 6위[15] 를 기록하며 잔류에 성공했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3.2. 2020-21 시즌
4. 관련 틀
[1] 어부들을 항구로 안내하기 위하여 비추는 붉은 빛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수도원에 있는 붉은 봉화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전자가 유력하다.[2] 입석 포함. 순 좌석 수는 861석이다.[3] 논리그 팀들이 FA컵에 참가하기 위하여 참가했던 예선에 해당하는 컵대회[4] 오늘날의 앵구스 주[5] 8-1[6] 당시 선수[7] 아치 톰슨, 2001년[8] 8팀 중[9] 논리그 팀들이 FA컵에 참가하기 위하여 참가했던 예선에 해당하는 컵대회[10] 단, 노던 리그의 멤버십은 유지하였음[11] 20개의 구단 중에서[12] 리그컵 준결승에 진출하였지만, 리그에서는 매우 부진하여 최하위를 기록하였다.[13] 전체 18팀[14] 4부 리그[15] 10팀